일본음식만담 食べ物/라멘 ラーメン

미소라멘의 원조 아지노산페이 (味の三平)

모리코네 2017. 9. 5. 15:27

일본라멘에 관한 포스팅을 하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일본라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단 말인가? 라멘데이타베이스 등의 각종 유명한 사이트를 탐방하고자료를 수집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쉽게 별점을 메기고 의미없이 평가를 내리기에 스스로의 견문이 너무나도 좁았구나하는 점이다.  결론은 라멘 시리즈를 시작한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 좀더 공부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필자는 주변 지인을 통해서 북해도(北海道홋카이도)라멘의 스토리를 전해  듣거나북해도 내에서도 유명하다는 집의 라멘을 자주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북해도 내에는 수많은 라멘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으며그 안에서도 삿포로(札幌),아사하카와(旭川),하코다테(函館),쿠시로(釧路) 등 각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10여년?전 쯤에 일본라멘기행이라는 프로에 나온 배나온 아저씨들 처럼 다 맛보지는 못하겠지만방문했던 가게만큼은 객관성을 전제로 주관적인 감흥을 마구 버무려서 써내려갈 생각이다.

 

유명한 맛집은 원조라는 단어를 흔히 볼 수 있는데삿포로라멘 하면 어떤라면이 떠오르시는가?  그렇다바로 미소라멘이다위키피디아에 삿포로 라멘홋카이도 라멘을 검색하면 단지 두 집만이 그 이름이 나온다삿포로의 아지노산페이(三平)아사히카와의 하치야(蜂屋)이다.


아지노산페이를 대표하는 미소라멘 


곧바로 북해도를 대표하는 라멘 그 첫번째로 미소라멘의 원조라고 알려지는 아지노산페이(三平)로 향했다라멘집 하면사용하는 면의 제면소(所면을 만드는 곳)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아지노산페이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면의 이야기 그리고 미소라멘의 탄생 스토리를 빼면 섭섭 하지만그 내용이 짧지 않기에 아지노산페이 2편 에서 다루겠다.

아지노산페이는 센트럴 이라고 적힌 이 건물 4층에 있다.

 

일반적으로 라멘집은 단층에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며노렌(暖簾 문앞에 걸어놓은 라멘집 이름등이 새겨진 천막)이 펄럭이는 풍경을 상상하게 되지만 이 집은 조금 특별하다.  초행길인 자가 방문하기엔 너무 깊숙한 문구(文具)의 숲에서 하얀 노렌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문구류를 좋아하신다면 발걸음이 느려지게 될 법한 장소.  방송용 세트장 같은 아기자기함.  주의 할 점은 가게가 상당히 일찍 마감을 하기때문에 저녁으로 드실 분들은 서두르지 않으면 그냥 돌아오기 쉽다.  그나마 비교적 도심에 있기 때문에 교통은 편할 것이다. -아지노산페이홈페이지 링크-


 

사실 필자는 미소라멘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소의 향이 너무 강해서 다른 식재의 풍미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찬사를 받는 그 유명한 스미레의 미소는 너무 달고기대에 반감하는 그 맛은 미소에 대한 거부감을 더욱 키우기만 했다그래서 처음엔 시오로 시작해서 최근까지는 쇼유라멘에 푹 빠져있다.  라면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현지 어르신 말에 의하면일본에선 젊은사람이 미소중년이 쇼유노년이 시오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본인은 라면식성이 회춘을 하고있나하는 생각으로 내심 웃었다.


 

넷상에 올라와 있는 평들이 그다지 좋지 않았고미소니까 별 기대하지 않는 그런 마음으로 가게를 들어섰다.  가게가 크지는 않다.  일자의 심플한 카운터석 구조로 손님들이 주방을 마주하며 나란히 빽빽히 앉아있고바로 그 뒤로 대기하는 손님들이 또 나란히 앉아 기다린다.  손님이 많을 때는 조금 압박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행주산성 원조 국수집처럼 손님이 먹고있는 테이블 옆에 다음 손님을 줄세워 쳐다보게 하고있는 정도는 아니다.


좌측의 안경을 쓴 나이든 사람이 2대 (大宮秀雄)씨

중앙의 통통한 안경을 쓴 사람이 3대 (大宮一人)씨 - 이 분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 이야 T T


한참을 뒷좌석에서 바라보고 있자니가게분위기는 하얗고 위생적인 느낌이 든다.  상당한 포스의 배를 지니신 주방장의 능숙한 손놀림과 하얀 라운드 반팔 티셔스와 위생모로 통일한 스텝들그런데 어쩐지 위화감이 있다.  그 모습이 뭐랄까따이따이를 외치는 차력무대의 느낌이다.  묘한 엄숙함이 흐르고 손님들의 후루룩 흡입소리와 함께 스텝들의 순간적인 움직임에 의한 소리들이 절묘하게 다이나믹하다.  예를들면 스텝들은 열중셧 자세로 대기하고 있다가도 재빠르게 라면그릇을 턱 하고 내려놓고또 물컵과 물을 따르는 절도?있는 움직임을 선보여 준다.  그리고 물잔이 비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웃음)  상당히 인상적이고 서비스 좋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이 가게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시다면 절대 의식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크흡ㅎㅎ하고 다가수의 노란 꼬불면이 당신의 코에서 나올 수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새하얀 순수한 티셔츠에 진지한 표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메뉴도 여느 라멘집처럼 심플하다.  미소 쇼유 등의 기본 셋팅과매콤한 텟카멘()차슈멘과완탕멘이 있고,사이드메뉴로는 슈마이가 준비되어 있다.  맥주는 삿포로클래식그리고 한국처럼 서비스는 아니지만 김치도 주문할 수 있다.  중화팬에서 식재가 춤을 추며 기름불과 함께 어우러지는 군침도는 연기는 언제나 설레이게 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드디어 기다리던 미소라멘의 원조가 눈앞에 놓여졌다.


 

김이 모락모락기존에 접해봤던 미소의 색깔보다는 빨간색이 덜한 조금 연한 색상의 스프 위로 히키니쿠(ひき肉다진고기)의 작은 덩어리들이 작은 섬의 군도와 같이 흩어져있다.  멘마는 가늘고 긴 형태고, 식재로는 양파가 눈에 많이 띈다. 기본 미소라멘은 챠슈가 없나보다.  차슈멘을 주문하면 비로소 차슈가 올려지는데북해도의 옛날 스타일(ながらの) 그대로의 비계가 적은 카타메(:단단한,질긴; 북해도에서는 추운지방이다 보니 옛날부터 비계가 적은 팍팍한 고기의 챠슈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인인 라면점주 왈)차슈이다.


  

사진을 찍고서둘러 스프를 한 입 먹어보았다.  !~~이것은…! 다시 한 번 음미했다.  의외로 이건 우스아지다.  기존에 접했던 라면에 비해서 짜지않다그렇게 달지도 않고구수함이라고 해야할까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뭔지모를 밍밍함.  튀지않는 정자세의 맛이라고 할까면류에 빠져있는 미식가들은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국물 맛이 아니야!’라고마치 명동칼국수와 같은! (여담 이지만, 필자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명동칼국수를 처음 먹었을 때는 밍밍한 국물과 푹 퍼져버린 국수 맛에, 왜 이 맛에 사람들이 열광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튀지않는 중후한 맛이었다) 시원하면서도 담백하고심플하다유막이 형성되어 있어 온기를 잃지않은 스프.  그들에게 이 따끈한 스프의 맛은 오랫동안 어머니가 끊여주신 돈지루(豚汁돼지고기,감자,당근,양파등을 기름에 볶다가 일본된장을 넣어 끓여낸 일본식 스프)와 같이 사랑받는 바로 그 익숙함일 것이다.


 

이어서 아지노산페이를 캐리한 일등공신 니시야마(西山:아지노산페이는 니시야마씨에게 면을 부탁한 이후로 오랫동안 니시야마제면소의 면을 사용해 왔다)의 면을 흡입할 차례이다.  가수면의 희미한 노란 빛깔.  중간 굵기의 치지레면.  그런데 식감이 독특하다.  지그재그로 꼬불꼬불하고밀도감이 있으며 쫄깃하다 못해 쫀쫀한 보통의 치지레면과 다르게엉성한 맛이 느껴진다.  육안으로 자세히 보면 지그재그와 동시에 나선형 꼬임도 있고 전체적으로 균일감이 1% 부족하다.  수타면이나 수제비 등에서 느껴지는 그 투박한 식감.  완벽하지 않고 무언가 부족한 듯한 식감은 오히려 기계적이지 않으며한국 시골의 어느 중화요리집 노포()에서 나오는 면발처럼 인간미의 불완전함을 느끼게 한다.


 

말이 필요없다.  일본의 예법()을 따라 힘껏 큰소리로 경쾌하게 흡입했다.  어느덧 배가 불러오고 온몸에 따스함이 스며든다.  삿포로의 눈보라를 헤치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이 한 그릇의 따스함은 대자연에 저항하는 고된 삶 가운데 한가지 낙()이되었을 수 있고손님들의 그 낙이야말로 연로한 점주가 두발로 버티며 노포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리라.  미소의 원조는 명불허전’ 이었다.


아지노산페이 쇼유챠슈라멘 


본래 작년에 발행하려고 준비한 포스팅이지만일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글을 마친다.  처음 포스팅을 시작했을 때 언급했듯이, 한글로 된, 북해도 삿포로 라면에 관한 심도있는 글은 전무했기 때문에 필자는 평소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또한 용어 등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초심자를 위한 일본라멘종류표(링크참조)도 정리하였다.  헌데이런이런…! 대개 음악에서는 물론이고모든 분야의 창작물 또는 2차 창작물에서 소스나 아이디어는 쉽게 카피되기 마련이다.  따라쟁이들의 양심은 보통사람보다 희박하기 때문임을 알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는 물론 많지만양 보다는 질을 생각하며한 글자 한 글자 서두르지 않고 신중함을 고수할 생각이다.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포스트를 통해서 전해본다.  첫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작년에 안타깝게도 타계하신 아지노산페이3代目 大宮一人점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소라멘의 원조로서 오랜시간 동안 그 대를 이어온 아지노산페이!  만약 다음 번에 가게를 찾아갈 때 그 분의 빈자리로 가게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면왠지 그 묘한 엄숙한 표정이 다시금 그리워질 것만 같다.